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역사가 숨쉬는 공주 & 금강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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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국사봉 등산로를 따라 금강변의 창벽에 올라 내려다본 금강의 낙조 풍경. 백제의 옛 도읍지였던 공주와 부여 땅을 적시며 흘러가는 금강은 저물녘에 내려다보아야 애잔함이 더 짙게 느껴진다.

 

‘예부터 이곳은 모여 썩는 곳, 망하고 대신 정신(精神)을 남기는 곳….’

시인 신동엽은 그의 시 ‘금강’에서 백제의 옛 땅과 동학혁명 격전지인 우금치를 가로질러 흘러가는 금강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. 전북 진안에서 발원해 서해의 군산까지. 금강은 무려 400㎞가 넘는 물길을 유장하게 흘러갑니다. 금강은 공주 땅을 흘러가면서 웅진강이란 이름을, 부여 땅을 흘러가면서 백마강이란 이름을 얻습니다. 그렇게 백제의 옛 땅을 가로지르며 백제 흥망의 꿈 자취를 따라 흘러갑니다.

공주를 끼고 흐르는 금강은 물굽이도 유순하고 흐름도 그리 급하지 않습니다. 강변의 깎아지른 절벽인 창벽에 올라 내려다보니 비단(錦)이란 그 이름처럼 물은 부드럽게 흘러내립니다. 해 질 녘 멀리 강물 위로 붉게 번지는 노을을 바라봅니다. 이곳은 백제의 옛 도읍지. 어쩐지 일출보다는 석양이 더 잘 어울리는 곳. 그래서일까요. 강 너머로 해가 지는 풍경이 이리도 애잔하고 쓸쓸할 수 없습니다.

공주에서 더 말을 보태지 않아도 꼭 들러 봐야 할 곳. 옛 백제의 영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공산성과 무령왕릉입니다. 날이 저물고 공산성에 은은한 나트륨 조명이 비춰지면, 1500여년 전의 옛 고대도시가 어둠 속에서 또렷하게 떠오릅니다. 무령왕릉이 쏟아 낸 유물들에는 백제의 화려하지만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던 시간이 켜켜이 묻어 있습니다.

또 공주에는 봄가을에 최고의 경치를 빚어낸다는 마곡사와 갑사도 있습니다. 갑사의 5리 숲길을 걸으면 제멋대로 자연스럽게 자라난 아름드리 고목들이 쏟아 내는 초록의 마지막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. 갑사에는 계곡 옆에 사방을 유리창으로 두르고 계곡의 물소리를 빨아들이는 운치 있는 찻집이 있습니다.

거기다가 이즈음 공주에서는 잘 익은 단단한 육질의 밤이 후두둑 떨어지고 있습니다. 가족과 함께 느긋하게 밤나무 숲을 거닐며 잘 여문 밤을 줍는 맛도 즐겁습니다. 눅눅한 습기로 가득했던 여름을 보내고 날마다 하늘이 높아지는 청명한 가을을 맞이하러 떠난 여정이라면 여기서 더 무엇을 바라겠습니까.

공주=글·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@munhwa.com